“삶이 바뀌지 않고는 글도 바뀌지 않는다. 익숙한 글감을 쓰면서 늙어가지 말고,
내가 좋아하며 알고 싶은 세계로 삶을 옮긴 것이다.”
-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중에서
대도시에 산 지 20년, 다음 20년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1996년 등단해 <불멸의 이순신><나, 황진이><거짓말이다> 등 장편소설만 29편을 써낸 김탁환 소설가는 딱 일 년만 쉬어보기로 하고 작업실 밖으로 길을 나섰다.
콘크리트 서울을 벗어나 종에서 횡이 아닌 횡에서 횡으로 걷다 당도한 곳은 전남 곡성. 지역 소멸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시대에 ‘이대로 소멸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도시 소설가는 자신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살아온 농부 과학자 이동현을 만나 ‘두 번째 발아'의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발아는 씨앗에서 싹이 튼다는 뜻이다.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부이자,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미생물 연구자인 이동현 대표는 2006년부터 곡성의 한 폐교에서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운영하고 있다. 미실란은 발아 현미를 연구하고 곡물을 가공하는 업체다.
2018년 3월, 지인들과 미실란에 있는 ‘밥카페 반하다’에서 밥을 먹은 우연은 이동현 대표와의 ‘징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 후 이동현이라는 ‘문제적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을 담은 르포형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2020년 출간)를 펴낸 김탁환 작가는 2021년 1월 삶의 터전을 곡성으로 옮겼다. 그가 말하는 네 번째 삶의 변곡점이었다.